85년생 오재형, 나는 지금, 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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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11-07 16:19 조회2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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딮포커스 X 뉴웨이브 노웨이브
85년생 오재형, 나는 지금, 투쟁 중이다
글_정주미 영화연구자
zoom1052@hanmail.net
“이 영화는 모든 한국어 사용자를 위해 화면 해설과 음향 자막이 추가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배리어프리 방식?’ 생소했다. 묘한 궁금증과 함께 영화의 첫 씬을 기다렸다.
“잡다한 물건들이 많은 방, 잠옷 차림의 저는 방 한가운데 서서 허리 스트레칭을 합니다. 저의 작업 실은 원룸 구조이고 제 방에는 커다란 창문이 나 있습니다. 저는 허공에 팔을 여기저기 휘저으며 뭔가 를 옮기는 시늉을 합니다.”
한 남자의 등장과 함께 흘러나오는 화면 속 그 남자의 내레이션과 자막.
이렇게 영화 <피아노 프리즘>은 시작한다.
영화 <피아노 프리즘>, 오재형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섹션 부문에 초청되었고 이번 10회 광주독립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내가 <피아노 프리즘>을 볼 즈음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광주독립영화제》에도 초청 전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감흥도 흥미도 없이 너무나도 무미건조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장면부터 ‘저’로 시작한다는 것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새 영화에 푹 빠져 육중한 감흥에 젖은 나를 발견했다.
영화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한 청년의 피아노 연습과 연주, 그리고 그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다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85년생, 그를 너무 얕본 탓일까.
영화는 배리어프리 방식을 도입하고 다양한 미디어들을 이용해 포스트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하며 종래의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유케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근래의 근현대사에 절대 잊어 서는 안되는 그 무엇인가를 소환한다.
신(新)다큐멘터리에 관한 序
일본 영화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에 의하면 일본 영화사 안에서도 특이한 발전을 해온 일본 다큐멘터리는 1945년 이전 가메이 후미오(亀井文夫)부터 70년대 오가와 신스케(小川紳介), 츠치모토 노리아키 (土本典昭)까지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자들이였다. 그러나 70년대 오가와 신스케 이후 정치적 투쟁이 옅어지고 90년대에 들어선 그 물음 자체가 풍화된다. 이후 하라 가즈오(原一男, 1945~ ), 하라 마사토(原將人, 1951~ ), 와타나베 후미키(渡辺文樹, 1953~ ), 가와세 나오미(河瀬直美, 1969~ ) 등에 의해 일본의 신(新)다큐멘터리 역사는 이어진다. 하라 가즈오는 자신의 사생활을 소재로 옛 애인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기까지를 생생하게 촬영(<극사적 에로스(極私的エロス 恋歌, 1974)>), 이를 ‘액션 다큐멘터리’라고 명명하고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ゆきゆきて、神軍, 1987)>를 만들어 그 정점을 찍는다. 하라 마사토는 대부분 독립영화 방식의 8미리 영화, 비디오로 엮어진 일기와 같은 6시간, 12시간 여행을 하는 기록영화, 개의 목에 카메라를 매달아 개의 시선으로 촬영한 영화 등이 있는데 그 안에는 타자는 있지만 적은 결코 없는, 하나의 동일 공동체로 형상화한다. 또한 영화 상영 시 본인이 직접 즉흥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기 때문에 상영시간이 일정치 않은 작품들도 있다. 이러한 실험적 퍼포먼스를 통해 자기 언급을 강하게 표출한다. 와타나베 후미키는 도호쿠 지방 살인 사건을 그린 <자잠보(ザザン ボ, 1991)>를 찍어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그는 영화란 오락도 예술도 아닌 단지 세상이 숨겨온 진실을 널리 관객에게 제시하여 사회적 고발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저널리즘 성격의 다큐를 지향한다. 일본 독립영화감독 중 여성인 가와세 나오미는 자신의 가족사진을 소재로 8미리 독립영화를 시작으로 할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달팽이:나의 할머니(かたつもり, 1994)>, <수자쿠(萌の朱雀, 1996)> 등 작품성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패 밀리 로맨스로 출발하여 자전적 차원의 갈등을 지나,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수립해가는 그의 영화적 방식은 1990년대 이후 일본영화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더이상 정치적 가담이 아닌 저널리즘적, 사적인 영역에서 자기 나름의 답변을 찾아가며 다 양성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1세대 감독들은 저널리즘의 왜곡된 보도, 국가기관의 선전물 등에 대항하는 영상물들을 제작하면서 사회운동과 결을 함께한, 예술가보다는 영화를 통한 운동가, 활동가들로 중앙 매체에서 독립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미디어를 지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대두된 사적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1세대 감독들의 성찰 과정과 맞물려 정치적 운동이 아닌 사적인 영역을 기록하면서 사회현실과 다큐멘터리의 관계를 고민하며 그 정체성을 묻기 시작한다. 사적 다큐멘터리는 사회현장 대신 ‘개인’과 ‘가족’의 공간에서 주제를 찾으며 감독인 ‘나’에게 카메라를 비추고 ‘나’를 탐구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사적인 것’에 ‘공적인 역사’를 개입시키는, 즉 ‘미시사’와 ‘거시사’가 서로 연결되어 개인의 사적인 기억이 거시사 안에 편입된 ‘대항 기억’으로 역사를 서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신(新) 다큐멘터리는 스타일 면에서도 남다른데 감독 개인의 개성이 드러난, 기존 다큐멘터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사법들이 다양하게 구현된다. 감독은 자신의 의식을 영화 속에 자주 등장시키며 관객을 개입시키거나 자신의 모습을 프레임 안에 포함 시켜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어필하기도 한다. 또한 타 장르를 가미한, 예를 들어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광고 등을 차용하는 장르적 혼용도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신(新) 다큐멘터리는 디지털 도입과 맞물려 사적 다큐와 장르적 혼합 다큐가 혼재시켜, 기존의 양식과는 또 다른, 표현 영역을 보다 확장시키며 다양한 플랫폼을 제시한다.
이러한 경향이 2000년대 이후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보여지는 가운데 영화 <피아노 프리즘> 역시 신(新) 다큐멘터리 작품군에 속한다.
자신의 작업실에서의 생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 모습,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보여지는 것들, 예술가로서의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 전시회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들까지 전부 감독 자신의 사적 스토리를 주체로 전개해 나간다. 영화는 일련의 ‘사적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영화’를 경계 없이 오간다.
여기서 잠시 에세이 영화에 대해 논하자면 2010년부터 독립다큐멘터리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감독이 정해진 양식 없이 감독이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으로서 감독이 사회적인 것과 마주함으로써 발생하는 ‘사유의 기록’을 의미한다. 에세이 영화의 감독은 사적 ‘서사의 주체’가 아닌 ‘사유의 주체’이다. 즉 어떤 대상을 감독의 경험과 인상들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서 장르의 경계도 없으며 형식도 자유롭다. 어느 면에서 사적 다큐멘터리와 맞물려있지만, 에세이 영화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대립이 아닌 감독의 ‘사유의 표출’로서 존재한다. 에세이 영화에서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그리고 실험영화 등을 오가며 어떤 대상에 집중하면서 그 대상에 대한 이끌림을 해명한다.
영화 <피아노 프리즘> 역시 감독 자신의 사유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사적 사유의 기록영화, 에세이 영화로 명명할 순 없다.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봤던 도시의 야경, 포장마차, 걷고 있는 사람들, 분향 소, 커다란 리본 설치물, 1인시위하는 사람들. ‘미시사 안에 거시사’. 영화 속 프레임 안에는 세월호 참사, 제주 강정마을, 광주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 국가 폭력이라는 거대 담론이 녹아내려 있다. 감독은 관객과의 소통의 도구로 피아노라는 매개체를 이용, 피아노 선율과 같은 자신의 사적 스토리에 역사적 씬들을 스크린에 자연스럽게 결합시켜 관객의 공적인 기억들을 재소환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는 화면 해설과 음향 자막이 추가된 배리어프리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영화 <피아노 프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베리어프리 영화라는 점이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란 고령자, 장애인 등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건축이나 도로, 공공시설과 같은 물리적인 장벽뿐 아니라 교육, 제도적 장벽 또한 없애기 위한 사회적 운동으로 1974년 국제연합(UN) 장애인 생활 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건축학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사회 곳곳의 분야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영화에서의 배리어프리는 영상 이미지와 소리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게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과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의 내레이션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2012년에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이 일반영화 버전과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개봉하였다.
오재형 감독은 영화 <피아노 프리즘>의 내레이션과 자막을 그 누구의 도움 전혀 없이 혼자서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 입혔으며 그 덕분인지 영화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내레이션은 영상을 보지 않고도 이미지가 그려질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그는 오랜 시간 앓았던 자신의 공황장애와 뇌졸중으로 인한 어머니의 신체장애 이후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박종필 감독의 <버스를 타자>(2002), 장혜영 감독의 <어른이 되면>(2018), 이길보라 감독의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 등의 영화를 통해 장애인에 관한 간접 체험을 경험하고 장애인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고 한다. 혼자 독학으로 만들어낸 배리어프리 버전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어린 시선을 가진 감독의 사유로부터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바람과 비장애인들도 자막이 있는 영화를 경험하는 장 (場)을 마련하고 싶어 제작하게 됐다고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신을 발언한 바 있다.
피아노를 통한 ‘나’의 메시지, 영화 <피아노 프리즘>
영화 <피아노 프리즘>은 그림을 그리다 은퇴한 화가, 두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이며 영화감독인 오재형이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작업실과 피아노 학원을 오고 가는 자신과 그 주변의 모습, 자신의 미술 작품과 피아노 연주라는 콜 라보 공연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 등 감독 자신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 지금까지 자신 이 만든 단편 영화들을 사이사이 끼워 넣어 작은 돌멩이를 던지듯 근간의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적 이슈들을 다시 한번 들춰낸다. 마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환영을 다시 불러들이듯이...이 아픈 기억의 소환은 어느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일상에 파문을 던진다.
“나는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웠고 피아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서른이 넘어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영 화감독과 미술가로서의 작품들을 피아노와 함께 발표하는 한 창작인의 모습, 서투른 실력이지만 용기를 내 어 꿈을 이루는 한 사람의 모습, 사회적 폭력과 차별에 소심하게 반응하는 한 시민의 모습을 이 영화에 담 았다. 관객은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배리어프리 방식으로 제작했다.(<피아노 프리즘> 아티스트 노 트 중에서)”
<피아노 프리즘>에는 2008년부터 제작한 그의 단편들이 감독의 사유의 흐름에 따라 적절히 배치돼 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2021)>, <화가의 숲(2019)>, <모스크바 닭도리탕(2019)>, <봄날(2018)>, <덩어리(2016)>, <블라인드 필름(2016)>, <강정 오이군(2015)>, <쇼팽이미지 에튀드(2008)>, 일곱 개의 단편들이 감독의 일상, 그리고 피아노 선율과 결합하여 하나의 장편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위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댄스필름, 실험영화라는 다양한 장르에서 각각 탄생됐지만 <피아노 프리즘>으로 포용 된 순간, 하나의 사적 다큐멘터리로 재탄생된다. 그러나 영화 <피아노 프리즘>은 ‘저’는 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고 해서 단순히 사적 다큐멘터리로 치부하기엔 영화가 내포하는 역량은 너무 크다.
러닝타임 90분의 영화 <피아노 프리즘> 안에는 오재형 감독의 단편 8편이 (실제 러닝타임보다는 단축되어 짜여져 있지만) 피아노 연주와 결합한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와 어우러져 재탄생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2021, 27분)>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묘사된 55개의 환상의 도시를 매개로 304개의 얼굴이 방 안에 가득 차 있는 도시 프로코피아, 곧 무너질 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도시 테클라, 주민들의 욕망에 의해 도시의 형태가 사라지는 도시 제노비아 등이 등장하는 한 편의 실험영화이다.
<화가의 숲(2019, 15분)>은 그림을 전공한 오감독이 일평생 화가로 살 줄 알았으나 더 이상 그림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음을 느끼고 화가로서 은퇴를 결심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일생의 한 시기를 반성한다는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 회화와 영상, 그리고 음악이 만났다.
<모스크바 닭도리탕(2019, 7분)>은 부모님과 북유럽 패키지여행을 떠났을 때 모스크바에서 닭도리탕을 먹었던 그때를 모티브로, 모스크바라는 낯선 것과 닭도리탕이라는 익숙한 것에 대한 묘한 이질감을 표현하면서 맥락없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몽환적인 보이스로 전달한다. 어딘지 모르게 잠결에 잠꼬대처럼 들리는 그의 몽환적인 보이스 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봄날(2018, 15분)>은 현대 무용가 4명과 수화통역사 1명이 몸짓과 손짓을 이용해 5.18 민주화운동을 표현한 ‘댄스 필름 다큐멘터리’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영화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광주의 거리가 주인공이다. 15분 동안 대사 없이 손짓, 몸짓이 국악과 어우러져 518의 참담함과 아픔의 역사를 연출해낸다.
<덩어리(2016, 21분)>는 UFO와 자신이 겪은 공황장애에 관한 이야기,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증상으로 이어지는가?” 누군가는 실제로 UFO와 외계인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이 거짓임을 알았을 때 가슴에서부터 뭔가 철렁 내려앉는 듯한, 그런 경험. 오감독의 일상생활 중 돌연히 찾아온 공황장애, 그러나 그 실체를 파악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연필과 펜을 이용한 애니메이션과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재현한다. 또 한 이 영화는 무성영화 버전이 오리지널 버전보다 더 유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블라인드 필름(2016, 7분)> “여기 우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왜 우는가? 오재형 감독을 칸으로 입성하게 한 작품, <블라인드 필름>. 그 안에는 강정마을, 세월호, 밀양, 옥바라지 골목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국가폭력에 관해 이야기한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영상에 애니메이션 기법 중 하나인 로토스코핑을 적용, 거기에 감독 직접 작곡해 연주한 피아노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연출을 선보인다.
<강정 오이군(2015, 6분)> 강정마을 앞바다에 잠들어 있던 오이군이 100년 만에 깨어나 오이카를 타고 강정마을을 여행한다. 수영도 하고, 그네도 타고, 강아지와 대화도 나누다가 오이군은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클레이로 만든 자체 제작한 오이군을 가지고 스톱모션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제작했다.
<쇼팽이미지 에튀드(2008, 2분)> “어느 날 거실에서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를 듣다가 표현 욕구가 생겨 제작하게 됐다”는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피아노 음악만으로 한 사람의 콧구멍 속에서 수많은 세계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광경을 표현한다. 자연, 인간, 좋은 것, 나쁜 것, 고뇌 등 수많은 감정들의 사유가 형이상학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작품들이 오재형 감독의 피아노 선율에 맞춰 하나씩 보여지고 각각의 작품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시너지를 내며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된 작품이 영화 <피아노 프리즘>이다. 영화는 마지막 씬 에 <블라인드 필름(2016)>을 상영하며 오재형 감독이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는 ‘오디오 비디오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감독의 마지막 변 (辯)을 토로한다. 이 씬에서 그가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오재형 감독의 목소리로 흘러나올 때 아마도 관객은 저 밑바닥 어딘가에서부터 끓어올라오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뜨거운 그 무엇(?)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피아니스트 오재형입니다.”
오재형 감독의 첫 장편영화 <피아노 프리즘>을 보고 난 후 나는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방법만 아는 사 람은 좋아서 하는 사람만 하지 못하며, 좋아서 하는 자는 즐기면서 하는 사람만 하지 못하다)’는 공자의 명언이 떠올랐다. 화가, 작가, 감독, 피아니스트 그에게 붙는 수식어들, 그는 천재인가? 아니 그는 영화 속에서도 말하듯이 피아노를 열심히 치는 이유에 대해 “그냥 좋아서 그냥 하는 거”라고 답한다. 그냥 좋아서 하 는 것이기에 즐겁다. 그러니 누가 감히 그를 쫓아 흉내낼 수 있겠는가.
85년생 오재형. 그는 광주에서 나고 자란 광주 출신 감독, 아니 피아니스트다.
5·18유공자인 어머니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녹음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재형 감독은 민중가요를 동요처럼 듣고 자랐다고 한다. 민주항쟁에 관한 의식을 강요받기보단 삶에서 자연스레 체득하고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시나브로 국가폭력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잘 보지 못해서 오히려 더 잘 보이고 잘 느껴지는 세계”, “아름다운 숲만 그리다가 세상을 둘러보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오재형 감독은 스무 살 때 취미로 배운 피아노라는 도구를 자신의 연장으로 꺼내어 세상과 소통한다. 그 안에는 애증하는 그림도 있고 자신만의 치유의 방법이었던 영화도 있고 글도 있다. 회화를 전공한 그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취미로 영화와 피아노를 치게 된다. 아홉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을 가긴 했지만 그땐 재미가 없어 그만뒀다. 그러다 스무 살 피아노를 다시 접하게 되고 군대 가기 전까지 그는 피아노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군대에서 지뢰밭 제거팀에 차출되었는데 그때 생명 수당과 병장 월급을 모아 전역하자마자 10년 된 중고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를 샀다는 그의 글에서 피아노에 대한 간절함과 애정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화가의 길에 몰두했고 피아노를 외면한다. 그러다가 미술 전시를 기획하던 중 다시 피아노와 조우한다. 그때가 2016년이다. 이후 하루에 5시간 이상을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며 지내던 그는 올해 SNS를 통해 알게 된 피아니스트 박창수로부터 연락을 받고 ‘예술가의 집’ 하우스콘서트를 제안 받는다. 그리고 그는 피아노 데뷔 무대와 함께 지금까지 자신의 제작한 단편 영화들을 선보이는 ‘비주얼 오디오 퍼포먼스’ 무대를 연다. 그가 꿈꾸던 무대를... 그가 “영상을 만들고 피아노 치는 사람이 된 것은 미디어 아티스트 다카키 마사카츠(高木正勝,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 OST 작업을 한 피아니스트 겸 영상미술가)”의 작업에 매료되어 자신도 그러한 이상적인 퍼포먼스를 기획, 다양한 장르와의 혼용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로 연출한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꿈을 이루게 된 것일까? 이번 10월 6일 개막하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섹션에 초청돼 공식적인 자리에서 영화 <피아노 프리즘>을 선보이며 ‘비주얼 오디오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그는 21세기에 걸맞는 디지털미디어를 이용해 지금도 여러 사람들과 작품을 통한 자신의 사유를 소통하고 있다. 인스타,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 등 그는 자신을 알리는 일에 익숙한 현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이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저 항’하고 ‘투쟁’ 중이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그는 대한민국의 부조리함과 맞서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잊혀져서는 안되는 것들’,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각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기에 영화 <피아노 프리즘>의 라스트씬은 비장하고 무겁고 슬프다.
오재형 감독은 영화라는 장르에 애니메이션, 음악, 공연, 회화라는 다양한 장르를 혼재시켜 다큐멘터리에 관한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하고 있다. 로토스코핑, 스톱모션, 베리어프리까지 모든 것을 혼자 독학으로 배워서 창작해내며 그 누구의 도 움없이 독립적으로 묵묵히 혼자서 투쟁중인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새로운 플랫폼을 실험, 도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도전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투쟁하는 법을 아는 대한민국의 85년생이다.
“나는 다 큰 어른들이 길가에서 한꺼번에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결국 사람들은 쫓겨났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끈해지고 있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군중 속에 휩싸여 나는 투쟁이나 시위의 흉내를 냈지만 그것은 나에게 어딘가 어색하기만 했다. ‘나만의 저항’, 혹은 ‘나만의 투쟁’은 무엇일까. 내가 만든 이 애니메이션과 이 음악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 잊혀진 사람 들을 한번 더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재밌어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런 방식으로...”(영화<피아노 프리즘>의 마지막 내레이션 중에서)